시민생물학과 한국의 과학

‘DIY바이오(bio)’에 대한 마땅한 번역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를 ‘시민생물학’이라 부를 것을 제안한다. DIY 바이오 운동의 중심엔 전문 과학자가 아닌 시민들이 있고, 전문가의 손에만 있었던 물학의 일부 영역을 시민들이 스스로 접근하고 발전시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모두의 소프트웨어, 모두의 생물학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만든다는 것은 결국, 더이상 생계를 위해 고되게 일할 필요가 없는 풍요로운 세계로 가는 한 단계인 […]

‘DIY바이오(bio)’에 대한 마땅한 번역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를 ‘시민생물학’이라 부를 것을 제안한다. DIY 바이오 운동의 중심엔 전문 과학자가 아닌 시민들이 있고, 전문가의 손에만 있었던 물학의 일부 영역을 시민들이 스스로 접근하고 발전시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모두의 소프트웨어, 모두의 생물학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만든다는 것은 결국, 더이상 생계를 위해 고되게 일할 필요가 없는 풍요로운 세계로 가는 한 단계인 것이다. – GNU 선언문 (1985) 중에서

컴퓨터의 역사엔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이라는 저항의 흔적이 있고, 현재 우리가 매일 접하고 살아가는 온라인 문화의 한 축이 바로 그 해커들로부터 시작된 저항의 흔적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카피레프트, 리눅스, 오픈소스 등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그들에 감사해야 한다.

그 운동의 중심엔 리처드 스톨만이라는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구루가 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독점 소프트웨어의 개발과 공급에 대한 저항을 통해 컴퓨터 문화에 도덕적, 정치적, 법적 기초를 세우는데 본질적인 영향을 주었다.

스톨만의 일대기를 보면, 그가 회사에 소속되어 만든 어떤 프로그램에 대해, 회사가 비밀 유지 합의서에 사인하기를 요구하고, 해당 소프트웨어를 공유하거나 이웃을 돕는데 사용하지 말 것을 강요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의 세대 중 MIT 해커 문화의 마지막 계승자였던 그는 점점 커지는 컴퓨터 기반 독점 기업들 (예를 들어 IBM)에 저항하기로 결심하고 1985년 GNU 선언문을 발표한다. 위에 인용된 구절은 바로 그 선언문의 마지막에 등장한다. 스톨만과 같은 구루가 있었기에 해커 문화의 기저엔 저항과 공유의 정신이 남게 되었다.

바이오해킹 혹은 시민생물학

바이오해킹 혹은 [bref desc=”DIY 바이오(bio)에 대한 마땅한 번역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를 ‘시민생물학’이라 부를 것을 제안한다. DIY 바이오 운동의 중심엔 전문 과학자가 아닌 시민들이 있고, 전문가의 손에만 있었던 생물학의 일부 영역을 시민들이 스스로 접근하고 발전시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DIY의 본래 의미인 ‘자작(自作)’생물학은 집에서 직접 만드는 수공예 생물학 정도로 의미가 축소되는 단점이 있다. 이미 미국 등지에서도 ‘시티즌 사이언스’라는 단어가 혼용되고 있으니, ‘시민생물학’이라는 용어가 적당할 듯 싶다. 자세한 설명은 한겨레 사이언스온, 오철우 기자의 http://scienceon.hani.co.kr/30513http://scienceon.hani.co.kr/?document_srl=30528 를 참고할 것.”]시민생물학[/bref]이 언론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건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 롭 칼슨이 <와이어드>에 기고한 ‘차고에서 하는 생물학의 시대가 왔다. 함께 하겠는가?(Splice It Yourself)‘라는 제목의 글이 일종의 기폭제가 됐고, 당시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일대를 중심으로 시작되고 있던 시민생물학 그룹의 차고 실험실이 조명받게 된다.

이후 2008년 DIY 바이오 조직이 창립미팅을 갖고, 2010년 뉴욕 브루클린에 첫 시민공동체 생물학 실험실인 젠스페이스가 문을 연다. 이 운동은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해서, 현재 미국 대부분의 주에 시민생물학 실험실이 존재하고, 캐나다와 유럽에도 수십개가 넘는 실험실이 문을 연 것은 물론, 아시아에도 홍콩, 싱가포르, 방콕, 일본 등에 시민생물학 운동의 씨앗이 심어졌다. (전 세계 DIY 바이오 위치)

도대체 왜 이런 운동이 시작된 것이며, 그 운동의 철학은 무엇인지에 대해 합의된 의견은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시민생물학의 기저에도 해커문화와 비슷한 종류의 암묵적인 동의, 즉 “모든 정보는 공유돼야 하고, 바로 그 공유행위가 과정을 빠르게 만든다”는 철학이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시민생물학 실험실은 비영리로 운영되고, 지역 공동체를 위해 생물학 실험실을 공유하며, 동시에 해커처럼 생물학의 어떤 문제들을 쉬운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과학을 공공에 개방한다는 정신과, 제도권 밖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해커문화의 결합, 아마도 이 두 문화적 흐름이 시민생물학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조합이라고 생각된다.

DNA in a microscopic view

한 가지 부연하자면, 바이오해킹과 시민생물학은 같은 범주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바이오해커로 스스로를 설명하는 이들 중에는 인간의 몸을 생물학적으로 개조하려는 욕망으로 실험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작업도 바이오해킹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분명히 시민생물학 운동에서 파생된 흐름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생물학 실험실은 인간의 유전자를 사회적 합의 없이 조작한다거나 하는 일을 수행하지 않는다. 따라서 바이오해킹이나 바이오해커라는 단어보다 ‘시민생물학’이라는 용어가 현재의 건전한 주류운동에 적합한 단어다.

해커문화와 생물학의 혼종, 시민생물학

시민생물학이 시작될 수 있었던 몇 가지 계기가 분명히 존재한다. 첫째, 20세기 후반은 생물학의 세기였고, 그 대미는 인간유전체계획이 장식했다. 인간유전체계획은 수많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들과 엔지니어들을 생물학으로 대거 유입시키는 역할을 했고, 이 과정에서 유전체학과 [bref desc=”Hagen, J. B. (2000, December). The origins of bioinformatics. Nature Reviews. Genetics. England. http://doi.org/10.1038/35042090″]합성생물학[/bref]은 전통적인 생물학과는 다른 학제적 성격의 과학으로 탈바꿈했다.

시민생물학 실험실이 주로 합성생물학 혹은 유전체학의 전통에서 연구를 진행한다는 사실은, 컴퓨터과학과 공학의 전통에서 생물학으로 흘러들어온 문화와 인물들이 이 거대한 운동의 주축이 됐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둘째, 20세기 후반은 분자생물학의 전성기였다. DNA 이중나선을 중심으로 하는 센트럴 도그마의 확립과 암 등의 질병연구를 통해 공공성을 획득한 분자생물학은 생물학의 표준이 됐고, 대학을 중심으로 기존의 모든 생물학 실험실을 점령해나갔다.

분자생물학의 확장과 함께 이들에 실험 기자재와 재료를 공급하는 회사들도 점점 커져갔고, 생명공학 산업의 발전이 맞물리면서 의생명과학은 거대한 관-학-산의 복합체로 커져갔다. 바로 이 과정에서 DNA를 다루는 연구장비와 재료들의 가격경쟁이 심해지면서, 기존엔 엄청난 고가였던 분자생물학 실험장비와 재료들의 가격이 하락했고, [bref desc=”Ledford, H. (2010). Garage biotech: Life hackers. Nature News, 467(7316), 650–652.”]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을 정도로 문턱이 낮아진 것이다.[/bref]

셋째, 노동집약적인 생물학 실험실의 특성상, 현재의 의생명과학계는 과포화상태이며 지속가능성을 상실해가는 중이다. 교수를 중심으로 한 피라미드 형태의 직업군은 이제 대학원이 이 직업에 매력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고, 노동강도에 비해 낮은 금전적 보상 또한 생물학자들의 과학에 대한 열정을 식게 만든다.

다행인 것은, 바로 이런 구조적 모순들이 생물학자로 하여금 새로운 기회에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시민생물학은 그 하나의 흐름이고, 시민생물학이 시작된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엔 이제 수없이 많은 바이오스타트업들이 들어서고 있다. 생물학은 빠르게 대학이라는 제도권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현실의 시민생물학

생물학자라고해서 시민생물학 운동을 더 잘 이해하는건 아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학과에서도 시민생물학이 뭔지 이해하고 동참하는 과학자는 드물다. 시민생물학 운동은 이제 막 시작된 초창기의 수준에 있다.

전문적인 생물학자의 영역이라고 생각되었던 유전자 조작, 생물학적 분석을 시민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처음엔 매우 주목을 받았지만, [bref desc=”Seyfried, G., Pei, L., & Schmidt, M. (2014). European do‐it‐yourself (DIY) biology: Beyond the hope, hype and horror. Bioessays, 36(6), 548–551.”]최초의 시민생물학 실험실이었던 젠스페이스에서 일어난 갈등과 시련, 미국의 몇몇 시민생물학 실험실에서 등장한 불법적인 인간개조 실험 등은 많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bref]

젠스페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생물학 운동은 꾸준히 전진 중이다. 특히 유럽의 시민생물학 운동은 메이커 운동과 접목되면서 새로운 모멘텀을 찾았다. 유럽의 시민생물학 실험실은 기존 제도권에서 훈련받았지만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생물학자들을 리더로 해서 확산되고 있으며, 이들은 잘 훈련된 실험기법과 사회적으로 합의된 법률을 따르면서 훌륭하게 성장 중이다. 특히 널리 보급된 3D 프린팅 기술과 아두이노 등의 값싼 컴퓨팅 기술을 이용해 기존에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들었던 형광현미경이나 세포배양기 등을 몇 십만원만 있으면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기존 제조업체들이 가지던 독점적 권리가 메이커 문화를 이용한 기술에 의해 붕괴될 위험에 처한 셈이다. 이는 기존 생물학 실험실을 운영하는 과학자들에게도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할 수 없이 공급처로부터 사야만 했던 여러 장비들을 이제 직접 싸게 조립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오픈 소스의 실험실 장비 설계도가 유럽의 waag society 등을 중심으로 확산 중이다. 필자의 실험실도 근처 대학의 산업디자인 대학원생과 교수, 공대의 교수와 학생들과 협업을 통해 필요한 장비들을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고 있다. [bref desc=”이와 관련된 논문들은 아래를 참고할 것
– Pearce, J. M. (2013). Open-source lab: how to build your own hardware and reduce research costs.
– Newnes. irnaturalCoakley, M., & Hurt, D. E. (2016). 3D Printing in the laboratory: maximize time and funds with customized and open-source labware. Journal of Laboratory Automation, 21(4), 489–495.
– Nuñez, I., Matute, T., Herrera, R., Keymer, J., Marzullo, T., Rudge, T., & Federici, F. (2017). Low cost and open source multi-fluorescence imaging system for teaching and research in biology and bioengineering. bioRxiv.
– Maia Chagas, A., Prieto-Godino, L. L., Arrenberg, A. B., & Baden, T. (2017). The €100 lab: A 3D-printable open-source platform for fluorescence microscopy, optogenetics, and accurate temperature control during behaviour of zebrafish, Drosophila, and Caenorhabditis elegans. PLOS Biology, 15(7), e2002702″]시민생물학이 확산 시킨 공유의 문화와 학제간 연구 정신은, 기존 제도권의 생물학 실험실도 감염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감염은 건강한 방식이다.[/bref]

한국의 현실과 새로운 과학문화 운동을 위한 제언

시민생물학 웹사이트에 나와 있는 정보에 따르면, 한국엔 현재 공인된 시민생물학 실험실이 없다. 뉴욕 젠스페이스의 창립자 중 한 명이 한국인이었지만, 한국의 과학계엔 그런 운동이 전승되지 않았다. 그 이유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현재 한국에서 혁신과 창조적 파괴를 가로막고 있는 모든 제도적 장벽들, 그리고 그 제도적 장벽들이 위계적 문화와 관료주의로 나타나는 현실에서, 시민생물학은 한국에 발을 딛기 어렵다. 시민생물학 실험실을 연다는 건 하나의 모험이고, 모험은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다. 한국사회가 젋은이들에게 공무원을 향한 꿈만을 강요하는 한, 시민생물학 실험실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DIY 생물학과 바이오해커

지난해 필자는 남궁석 박사, 이소요 작가와 함께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 관장의 동의를 얻어 ‘DIY 생물학과 바이오해커‘라는 제목의 심포지움을 개최했고, 지난해 12월엔 처음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DNA-PCR 워크숍이 개최됐다. 뉴욕의 젠스페이스, 유럽의 시민생물학 실험실 등은 모두 제도권이 아닌 시민이 자율적으로 조직한 운동이지만, 한국의 실정은 어쩔 수 없이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쩌면 그것이 한국형 과학의 현실적 모습일 수도 있다.

필자는 한국에서 과학자로 훈련받았지만 현재는 캐나다에 몸담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과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객관적 조언을 해줄 수는 있지만, 실제로 그 일을 해야 하는 주체는 한국의 과학자들이다. 한국의 과학은 처음부터 정치적 도구로 수입됐고, 도구적 존재로 여전히 각인됐 있다.

우리 헌법은 과학을 경제적 발전의 도구로 기술하고 있고, 그 말은 한국사회에서 과학자란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한 쓸모 없는 직군이 된다는 뜻이다. 개헌 논의가 시작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사회는 과학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과학은 한국사회에서 무엇인가. [bref d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 ESC의 개헌운동을 주목할 것. http://www.esckorea.org/board/notice/662‘]개헌은 바로 한국사회의 과학에 대한 인식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bref]

한국사회에 필요한 과학은 무엇인가. 그 문제에 대해 꽤 오래 고민해왔지만, 가장 현실적인 대답과 그 대답을 실천하기 위한 대안은 한국 과학자들의 몫이다. 작년 한해 한국 과학자 사회를 들끓게 했던 창조과학자 박성진 교수의 중소기업부 장관지명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브릭에 연재했던 기고의 마지막 글은 ‘새로운 과학운동을 향해’ 였다. [bref desc=”이 글에선 일부러 시민생물학과 관련된 윤리적 논란을 크게 다루지 않았다. 한국의 학계는 제대로 정착하지도 않은 과학보다 기형적으로 과학에 대한 윤리적, 철학적 논의가 많은 상황이다. 필자는 시민생물학이 한국에 정착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윤리적 논란은 그 씨앗을 틔우지 못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며, 아래와 같은 문헌들을 접했지만 굳이 다루지 않았다. 또한 한국의 생명윤리학계는 시민생물학에 대해 깊이 연구하지도 않은 상태다. 때가 되면 이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시민생물학 진영엔 분명 리처드 스톨만 같은 인물과 운동의 정치적, 사회적, 윤리적 논의가 필요하다.
irnatural우태민, & 박범순. (2014). Post-ELSI 지형도. 과학기술학연구, 14(2), 85–125.
조형택, 김선영, 이일하, & 이인석. (2013). 두려움과 경외를 넘어 현실의 BT 로. 철학과 현실, 7–78.
전혜숙. (2016). 생명의 감시와 통제를 비판하는 바이오아트. 미술이론과 현장, 21, 158–189.”]그 글의 함의는 시민생물학 운동과 맞닿아 있다. 그 글의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졸고를 마치려 한다.[/bref]

“과학대중화운동은 ‘아는 것’에서 ‘하는 것’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한번 몸에 익힌 습관은 잘 사라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자전거 타기는 평생 한번만 익혀 놓으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과학이 하는 것이 되면, 한국에서 교육받은 이들은 과학을 몸에 익히게 되고, 천천히 이 사회엔 과학을 몸으로 체득한 이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런 노력 속에서, 창조과학회 같은 사이비 단체는 굳이 나서 분쇄하지 않아도 햇볕에 녹는 봄 눈처럼, 그렇게 사라지게 될 것이다.”

글 | 김우재. 과학적 아나키스트.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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